나는 '참치형'인가 '가자미형'인가? [고두현의 문화살롱]

입력 2024-01-09 17:27   수정 2024-01-10 00:08


벌써 열 번째 새날이다. 새해 첫날 아침의 푸른 다짐은 그새 빛이 바랬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도 맥없이 무너졌다. 지난해처럼 또 작심삼일로 끝나려나. 야무진 계획은 흐릿해지고 몸놀림이 둔해졌다. 자벌레 걸음처럼 느린 움직임에 조바심까지 난다.

바다 생물 중 가장 빠르고 부지런한 것은 참치다. 참치는 잠시도 쉬지 않고 달린다. 태어날 때부터 끊임없이 헤엄을 쳐야만 살아남는다. 헤엄을 멈추면 질식해 죽는다. 아가미 근육이 없기에 입으로 물을 빨아들여야 숨을 쉴 수 있다. 잠을 잘 때도 뇌만 쉴 뿐 몸은 계속 움직인다. 그래서 참치에게는 넓은 대양이 필요하다.

참치는 원래 다랑어류만 지칭하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다랑어류와 새치류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 가운데 가장 빠른 것은 최고 시속 112㎞를 자랑한다. 그래서 ‘바다의 치타’로 불린다. 미끈한 몸체에 날쌘 몸짓, 물의 저항력을 이기고 자유자재로 방향을 전환하는 힘까지 갖췄다.
가장 빠른 치타도 지구력은 약해
반대로 가자미는 느리다. 모래 밑에 배를 깔고 있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그제야 움직인다. 평소에도 헤엄을 친다기보다는 물결에 떠다닌다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다. 아무리 넓은 바다에 살아도 가자미의 바다는 작은 연못과 다름없다. 이어령 선생은 이 둘을 비교하며 삶의 유형을 ‘참치형’이냐 ‘가자미형’이냐고 묻곤 했다.

그러면서 “어느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정답을 요구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운명이 가자미형에서 참치형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은둔의 나라로 불리던 한국은 시속 100㎞ 이상으로 오대양을 누비는 참치 어군처럼 전 세계에서 숨 쉬고 있다.

하지만 이젠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왜 우리는 쉬지 않고 헤엄쳐야만 하는가. 왜 더 깊고 넓은 바닷속으로 지느러미를 곧추세우고 달려야만 하는가. 광속으로 펼치는 속도전의 승부에는 한계가 있다. 등지느러미에 문제가 생기면 방향타를 잃게 된다. 참치의 스피드만 강조하다가 가자미의 에너지 효율성을 놓치는 경우도 많다. 때로는 참치의 힘과 속도, 가자미의 관조와 순간 포착 능력을 융합해야 한다.

땅에서 가장 빠른 치타의 경우를 보자. 최고 시속 120㎞에 이르는 치타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가감하면서 운동 방향을 유연하게 바꾼다. 한걸음에 속도를 초속 3m씩 올리기도 하고 초속 4m씩 줄이기도 한다. 가속과 감속 능력이 말의 두 배나 된다. 평균 50㎏의 적당한 몸무게를 유지하면서 근육의 힘을 키운 덕분에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이 될 수 있었다.

이렇게 빠른 치타도 지구력은 약하다.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는 거리가 300m도 안 된다. 전속력으로 달려 체온이 40도 이상 올라가면 몸 안의 단백질이 변형되면서 생명이 위독해진다. 그래서 50~100m 떨어진 곳까지 조용히 다가간 뒤 폭발적인 속도로 먹이를 덮쳐 1~2분 안에 승부를 낸다. 사냥에 성공하는 확률도 속도를 줄였을 때 높아진다. 먹이를 겨냥해 빠르게 감속하고 재빨리 방향을 바꾸는 민첩성이 가장 큰 무기다.

하늘에서 가장 빠른 송골매는 어떤가. 송골매의 최고 시속은 389.46㎞에 달한다. 이는 먹이를 잡기 위해 급강하할 때의 순간속도다. 사냥감이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접근해 순식간에 낚아채니 눈 깜짝할 사이다. 그러나 기동성은 떨어진다. 가장 빠른 수평 비행 속도를 가진 새는 시속 127㎞의 앨버트로스라고 한다.

이들 ‘날쌘돌이’와 반대로 나무늘보는 ‘느림’을 최고의 생존전략으로 삼는다. 나무늘보는 시속 900m로 움직이는 느림보다. 잠도 가지에 매달려서 잔다. 워낙 느릿느릿하니 신진대사가 느리고 근육도 작다. 근육이 작으면 에너지 사용량이 줄어 조금만 먹고도 오래 버틸 수 있다. 가벼우니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기도 편하다. 높은 곳에 있으니 포식자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앞다퉈 달리다 죽는 스프링복
살다 보면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때가 많다. 아프리카 영양의 일종인 스프링복(springbok)은 시속 88㎞까지 달린다. 4m 높이까지 점프도 한다. 그런데 가끔 강이나 절벽으로 뛰어들어 떼죽음을 당한다. 이들은 무리 지어 풀을 뜯다가 좋은 풀밭이 발견되면 뒤에 있던 녀석이 앞으로 달려 나가고, 앞에 있던 녀석은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빨리 달려 나간다. 결국 수백 마리가 앞다퉈 달리다가 절벽 앞에서도 멈추지 못하고 몰사하고 만다.

이렇게 맹목적으로 앞사람만 따라 뛰다가 참사를 당하는 것을 ‘스프링복 현상’이라고 한다. 목적을 잃어버린 속도는 위험하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아야 방향성도 잡힌다. 목표와 방향이 일치할 때 속도와 효율의 시너지가 난다. 직장에서 일할 때나 가정, 사회에서 활동할 때도 그렇다.

일할 때는 ‘독수리형’과 ‘오리형’을 염두에 두자. 독일 컨설턴트 보도 섀퍼에 따르면 독수리형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해결책을 찾고, 오리형은 뭐든지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생각과 핑곗거리를 찾느라 꽥꽥거린다. 시간이 지나면 둘의 차이가 명확해진다. 독수리형은 책임과 권한의 봉우리를 넘어 창공으로 날고, 오리형은 책임 회피에 남 탓하느라 자기 권한까지 잃은 채 작은 연못에 갇힌다.

새해 첫날의 결심을 되새기며 다시금 나를 돌아본다. 나는 ‘가속의 힘’과 ‘감속의 지혜’를 겸비하고 있는가. 참치처럼 빠르게 헤엄치면서 가자미처럼 느긋하게 기다릴 줄 아는가. 치타와 송골매처럼 민첩하면서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만큼 유연한가. 독수리의 진취성으로 새 영역을 개척할 줄 아는가. 오리처럼 핑계만 대며 꽥꽥거리는 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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